화가 사라 백,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색으로 시간을 그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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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디에이고에서 세계 무대로 '기억의 가장자리' 개인전 잇따라 개최, 자연과 기억, 시간의 흔적을 화폭에 담아 NAWA 시그니처 멤버
샌디에이고에서 활동하는 한인 화가 사라 백(Sarah Baek)은 단순히 꽃과 나무를 그리는 화가가 아니다.그녀가 화폭에 담는 것은 눈앞에 보이는 자연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도 마음속에 남아 현재를 움직이는 '기억의 감각'이다.꽃과 식물, 빛과 공간은 그의 작품 속에서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언어가 된다.
최근 솔라나비치 시청 갤러리(Solana Beach City Hall Gallery)에서 개인전 'Edges of Memory(기억의 가장자리)'를 시작한 사라 백 작가는 오는 9월부터는 ‘엔시니타스 101 메인스트리트 갤러리’에서도 연이어 개인전을 열며 샌디에이고 미술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 전시들은 모두 최소한 1년 전에 수많은 전시 희망 작가들로부터 신청을 받아 갤러리 측이 우수한 작품과 작가를 선정해 직접 전시회를 열게 된다. 이곳에서 전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이다. 사라 백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하다 보면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색채에 먼저 시선을 빼앗긴다. 그러나 오래 바라볼수록 풍경보다 감정을, 형상보다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기억'이라는 단어를 꺼낸다."과거의 사건은 시간이 지나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흐려지지만, 그때 형성된 색과 빛, 공기와 공간의 감각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그리고 자신의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이렇게 정의한다."과거에 형성된 감각은 현재를 어떻게 움직이는가."
이 한 문장은 사라 백 작가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하다.
물질이 된 시간, 화면 위에 쌓인 기억
사라 백 작가의 작품에는 독특한 화면 질감(마띠에르)이 등장한다.
미술에서는 이를 프랑스어 '마띠에르(Matière)'라고 부른다. 단순한 표면 효과가 아니라 작품이 지닌 물질성과 시간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조형 요소 중의 하나다.그는 한지와 신문지를 찢고 겹겹이 쌓아 새로운 화면을 만든다. 신문은 원래 하루의 사건과 정보를 담는 기록이지만, 그의 작업 안에서는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물질로 변한다.
백 작가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신문은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이지만 작업 안에서는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상태로 변합니다. 정보는 사라지지만 물질은 남습니다."
그에게 마띠에르는 단순한 질감이 아니다. 시간이 축적된 흔적이며 반복된 삶의 기억이다."마띠에르는 시간이 물질이 되는 과정이며, 반복된 행위가 화면 위에 남긴 흔적입니다."
그래서 그녀의 작품은 과거를 회상하는 그림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를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시각적 기록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세계 무대로 활동 영역을 넓혀
효성여자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사라 백 작가는 오랜 작품 활동 끝에 최근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하며 MFA 학위를 취득했다.
백 작가의 작품 세계는 더욱 넓어지고 있다. 미국 말리부 시티 갤러리, 뉴욕 코스모스 갤러리, 영국 런던 부머 갤러리, 일본 요코하마 시민미술관 등에서 열린 국제전과 초대전에 참가하며 활동 영역을 확장해 왔다.
지난해에는 일본 KEN 국제미술전에서 특별상을 받았고, 대구·경북미술대전에서는 최우수상 수상작이 없는 가운데 우수상을 수상하며 국내외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올해에는 미국여성미술가협회(NAWA·National Association of Women Artists) 제137회 연례전에 참가도 했다.미국에는 수많은 미술 단체가 있지만, NAWA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1889년 설립된 NAWA는 미국 최초의 여성 순수미술 단체로, 남성 중심이던 19세기 미술계에서 여성 예술가들의 전시와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날에도 엄격한 심사를 거쳐 선정된 전문 작가들에게만 시그니처 멤버 자격이 주어지며, 회화뿐 아니라 조각·사진·설치미술 등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이 활동하고 있다.
사라 백 작가는 이 단체에서 단순한 회원을 넘어 Signature Member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심사하는 Peer Juror 역할도 맡고 있다. 이는 동료 예술가들로부터 전문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의 작품이 뉴욕 연례전에 꾸준히 초청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독일 베를린의 GlogauAIR 온라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도 선정되며 국제 미술계와의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지역사회 봉사와 함께 성장하는 예술
사라 백 작가는 지난해 샌디에이고 지역 방송 KUSI에도 소개되며 지역 예술가로서 관심을 받았다. 지역 방송의 조명은 단순한 홍보를 넘어, 샌디에이고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가 지역사회와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사라 백 작가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샌디에이고 한인사회와의 연결을 소중히 여긴다.오래전부터 틈틈이 ‘한국의 집(House of Korea)’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해 온 백 작가는 이제는 이곳에서 한국 미술을 소개하는 전시와 문화 프로그램 행사를 주관하는 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황정주 한국의 집 회장에 따르면 백 작가는 작년 이사회에서 ‘한국 현대-시각예술 프로젝트 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앞으로 한국과 미국 현지의 영 아티스트들의 작품전을 이끌게 될 것이라고 한다.
우선, 오는 11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 있는 무명 작자들과 샌디에이고 등에서 활동하는 영아티스트를 동시에 초청해 그림전시회를 열고, 지역 예술인들과 시민들을 잇는 다양한 문화 활동에도 힘을 보태게 된다.그녀는 예술이 특정 계층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속에서 함께 호흡해야 한다고 믿는다.이번 개인전 역시 작품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들이 자신의 기억과 삶을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준비했다고 한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기도 하지만 새로운 의미를 더하며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갑니다.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기억과 감정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라 백 작가의 함축된 표현이 가슴에 와닿는다.
기억은 현재를 만든다
예술은 종종 과거를 기록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라 백 작가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녀는 과거를 그리지 않는다. 과거가 오늘의 우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 움직이는지를 그린다.화려한 색채와 자연의 형상 속에는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빛, 오래된 계절의 공기,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감각들이 층층이 스며 있다.
샌디에이고에서 불붙기 시작된 그의 화폭은 이제 뉴욕과 런던, 베를린, 일본을 향해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은 한국인 이민 작가 한 사람의 성공을 넘어, 한인 예술가들이 세계 미술계에서 자신만의 언어로 존재감을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뜻있는 사례가 되길 바란다.
<케빈 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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